[교단일지] 계속 잘할 수 있도록 응원할게
김애름 광주 수완초등학교 교사
[글로벌신문] 때는 2011년 9월이었습니다. 중간에 발령을 받아 부푼 가슴을 안고 학교에 들어섰던 그 때, 제 안에는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과 어떤 일도 해낼 수 없을 거 같던 불안감이 묘하게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주어진 건 2학년 담임교사였습니다. 그 반에 굉장히 뛰어난 학생이 있다는 말도 함께 2학년 2학기 O반을 맡게 되었습니다. 의욕이 넘치던 저는 ‘영재학생을 위해 나는 어떤 교육을 할 수 있을까?’하는 부푼 꿈과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교실에 들어섰습니다.
그랬던 제가 그 친구를 처음 마주하고 느낀 감정은 당혹감이었습니다. 분명 그 친구는 뛰어난 학생이었습니다. 풍부한 독서로 다양한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으며 비판적 사고 능력이 뛰어나 또래의 친구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인식할 만한 일에도 늘 의문점을 가지고 되물을 수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제가 느끼기에는 그 친구는 이성과 감성이 불균형하게 성장한 학생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이성적 판단을 따라오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늘 울분에 차 있었으며, 합리적이거나 타당하지 못하다고 느껴지는 학교나 어른들의 판단에도 적대감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학교 중앙통로에 왜 학생들이 다니지 못합니까? 이것은 인권침해입니다.’와 같은 내용의 대자보를 써서 학교에 붙이는 것과 같은 활동을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제 기준에서도 고개가 끄덕여지거나 타당한 주장이라고 생각되었지만, 2학년이 이런 생각을 하고 항의문을 써서 학교에 붙이는 행동력을 보여줄 수 있다니, ‘보통 비범한 아이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차원이 높은 사고로 판단하다 보니, 그 친구 눈에 세상은 답답하고 합당하지 못한 것 투성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듯 하였습니다. 크고 넓은 날개를 가진 그 친구가 새장 안에 갇혀 있어 힘들어하는 것이라고 그때의 저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어쩌면 힘들어했을 그 친구는 학급의 친구들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소란을 일으키곤 했습니다. 흥분하면 감정이나 행동을 제어하는데 문제가 있는게 분명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이성을 잃고 폭력적으로 변했습니다. 빗자루를 들고 친구와 교사에게 휘두르거나 나무젓가락을 연필깎이로 뾰족하게 깎아 친구를 위협하는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그걸 제지하던 저와도 자주 투닥거림이 발생할 정도였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런 일과 마주할 때마다 저도 나약하고 미성숙한 제 스스로를 발견했습니다. 그 친구보다 더 오랜 시간 살아와서 ‘선생님’이라는 세글자를 가슴에 달고 있는 제가 어느새 10살 아이와 똑같아져서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함께 흥분하거나 말꼬리를 잡고 있었다는 것을 그날그날의 상황이 종료되고 나면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폭풍과도 같았던 2학년 담임교사를 우여곡절 끝에 마치고 시간은 물 흐르듯 지나갔습니다. 그로부터 7년 후 SNS에서 그 친구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랩을 열심히 하고 있고 나름 이름을 알리는 유명하고 개성있는 친구가 되어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누구라도 당연스럽게 여기던 일들 중 잘못된 일에 대한 비판력이 뛰어났던 그 친구는 적성에 맞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 내가 그 당시에 교사로서 이런 방향으로 그 친구의 일반적이지 못한 에너지를 이끌어줬다면 어땠을까? 그 친구는 조금 더 빨리 방황을 끝내고 자신의 꿈을 더 빨리 펼쳐나갈 수도 있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처음이어서 그리고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해. 넌 남들이 보지 못하는 당연하게 여기는 잘못된 면을 보는 대단한 아이였고, 그걸 이해 못해주는 친구들과 선생님에 대해 답답한 마음에 힘들어했었던 것인데 선생님이 그걸 몰랐어. 멋지게 자라주어서 대견하고 계속 잘할 수 있도록 응원할게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