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절기와 천체를 담아 풍요와 안전을 기원하던 대마 성산리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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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절기와 천체를 담아 풍요와 안전을 기원하던 대마 성산리 고인돌
  • 유창수 기자
  • 승인 2022.03.0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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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렬 (사)고창문화연구회 사무국장(지리학 박사)
이병렬 (사)고창문화연구회 사무국장(지리학 박사)

[글로벌신문] 전남 영광 대마와 전북 고창 대산의 도계를 따라 고산성로가 있고, 그 길가 영광군 대마면 성산리 87번지 민묘군에는 고인돌 8기가 있다.

이곳의 고인돌들은 저마다 24절기 중 동지, 춘분, 하지, 추분의 천체현상을 담은 고인돌과 별자리를 관측하는 방위와 관련이 깊다. 선사인들의 천체 관심은 사람들의 삶과 절대적 관계가 있는 태양행성 등에 있었다. 특히 농사와 관련이 깊은 태양의 변화는 선사인들의 주된 관심의 대상이었고, 행성과 별은 인간의 길흉화복과 농작물의 풍흉을 예측하는 점성으로서 관련이 깊다.

선사인들의 태양에 대한 주된 관심은 해돋이와 해넘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들이 주의 깊게 관심을 가지고 기록한 많은 해돋이와 해넘이의 지점들 중 어느 곳을 표준 기준으로 삼았던 것일까? 선사인들의 태양에 대한 관심은 밤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짓날, 밤과 낮의 길이가 비슷한 춘분날과 추분날,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짓날 등의 해돋이와 해넘이 지점이었다.

대부분의 고인돌들은 위 네 절기를 담고 있는 경우가 가장 보편적인 장축 또는 굄돌 통로 방향의 패턴이다. 이런 고인돌의 방향성과 고인돌 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한국 학계는 물론이고 세계 학계에도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필자의 연구를 통해 얻어진 결과이다. 이러한 고인돌 패턴을 일단 고인돌코드’(Dolmen code)로 부르고자 한다.

고인돌코드의 핵심은 조사하고자 하는 지점에서 해가 평야바다산봉우리계곡 등의 동짓날춘분날하짓날추분날의 해돋이와 해넘이 지표면과 맞닿는 곳의 8방위각 측정이다. 이들 절기의 일출과 일몰 방위각은 측정하고자 하는 지역의 지형지세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나 큰 차는 아니다. 주위가 넓은 평야나 바다와 면해 있으면 높은 산이 있는 지역에 비해 일출은 빨라지고 일몰은 조금 늦어진다. 반대로 주위가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으면 바다나 평야 지역보다 일출은 늦어지고 일몰은 빨라진다.

보통 평지와 바닷가의 영광 지역에서 622일경인 하지의 일출은 60°후이고, 일몰은 300°전이다. 322일 경의 춘분과 922일 경의 추분 일출은 90°후이고, 일몰은 270°전이다. 1222일 경 동지의 일출은 120°이고, 일몰은 240°이다. 이러한 절기와 태양의 일출일몰 간의 관계는 선사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특히 네 절기의 방위각 선정에 있어 일몰보다는 일출이 우선시 되어 나타난다.

민묘군의 서쪽에 있는 전형적인 바둑판식 고인돌은 덮개돌이 직사각형이고, 직사각형의 장축이 동쪽으로 100°이며, 서쪽으로 280°를 바라보고 배치되었다. 이 고인돌의 크기는 장축 390cm, 단축 215cm, 높이 135cm이다.

민묘군의 동쪽 가장자리에 있는 고인돌도 덮개돌의 장축이 위와 같은 방향을 띠고 있고, 이 고인돌의 크기는 장축 340cm, 단축 190cm, 높이 50cm이다. 이 두 기의 고인돌 방위각 100°는 춘분과 추분의 평지나 바다가의 해돋이 방향보다 방위각이 크다. 이는 동쪽으로 고산과 고성산의 경계인 가래재의 높은 고개가 있어 일출이 조금 늦어지기 때문이다.

그 반대인 서쪽의 280°는 춘분 이후와 추분 이전의 일몰 방위각으로 춘추분의 일출 중심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 고인돌군 서쪽으로 넓은 평지가 발달해 있어 추분과 춘분의 일몰이 270°에 거의 일치하나 동쪽 일출이 100°로 늦어진 관계로 그 반대는 어쩔 수 없이 280°가 된다.

동쪽 가장 끝에 놓여 진 한 기의 작은 고인돌은 덮개돌의 장축 방향이 120°와 그 반대인 300°이다. 이 고인돌의 크기는 장축 300cm, 단축 170cm, 높이 60cm이다. 이 방위는 동짓날의 일출지점과 하짓날의 일몰지점을 향하고 있어 동지와 관련이 깊은 고인돌임을 알 수 있다. 선사인들에 있어 동짓날은 음이 기운이 물러가고 양의 기운이 부활한다는 탄생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선사인들은 동짓날을 새해라 하고, 한 해의 출발점으로 삼았을 것이다.

민묘군의 가장 서쪽에 있는 탁자식 고인돌은 받침돌이 4개가 있고, 덮개돌은 직사각형 형태로 한 면이 깨진 고인돌이다. 이 고인돌의 크기는 장축 350cm, 단축 260cm, 높이 140cm이다. 덮개돌의 방향은 장축이 150°로 고성산을 바라보고 있다. 이 방위는 초저녁에 동쪽 고성산에서 떠오르는 별들과 해뜨기 직전 샛별인 금성을 관측할 수 있다.

민묘군의 중심에 가오리처럼 생긴 오각형의 기반식 고인돌이 있다. 이 고인돌은 오각형의 뾰족한 부분이 245°을 향하고 있고, 뾰족한 부분과 그 반대인 평평한 면의 중심을 이은 선의 방위가 65°이다. 이 고인돌의 크기는 장축 430cm, 단축 360cm, 높이 100cm이다.

고인돌의 뒷부분으로 보이는 65°는 고창 상금마을 뒤의 고산을 가리키고 하짓날 일출지점이다. 하지는 농사로 가장 바쁘고 물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때다. 이 시기에 가뭄이 들면 옛 사람들은 기우제를 드렸다.

뾰족한 부분이 가리키는 245°는 동짓날 이후 12월 말의 일몰지점이고, 해넘이 직후 개밥바라기인 금성이나 다른 별들을 관측하는 방위다. 고인돌이 정밀한 어떤 모양을 띠는 것이 아니 때문에 몇 도의 방위각 오차는 선사인의 의도와는 관련이 없이 당연히 생긴다.

한편, 고인돌의 덮개돌이 가오리나 새처럼 생긴 것은 인간의 혼이 하늘의 은하수와 구름 위를 날아 편안하게 건너기를 바라는 의도였는지 모른다. 선사인들은 이승이나 저승을 동일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이승의 강이나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이 저승의 큰 강인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는 사유체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 동북아시아의 샤먼들은 새가 이승과 저승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로 인식하고 있었다. 때문에 죽은 자의 혼이 새를 타고 간다면 훨씬 쉽게 북두칠성과 북극성에 간다고 믿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방위의 고인돌은 죽림리고인돌군 앞에 있는 제사기능의 제단으로 보이는 240° 고인돌과 같이 조상들을 숭배하기 위한 동짓날의 제단의 가능성도 있다.

성산리의 고인돌은 동짓날, 하짓날, 춘추분 등의 절기와 농사 일정 등을 담고 있고, 어떤 고인돌은 별자리를 관측하여 농사의 풍흉을 예측하고 기상여건 등을 확인하였다. 또한 선사인들은 와탄천을 따라 서해로 오가며 어로와 물물교환 등의 생산 활동을 하였을 것이다. 때문에 항해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지내는 성스런 공간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대마 성산의 가오리모형 고인돌
대마 성산의 가오리모형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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